[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유방암은 환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면서도 치료법 발전으로 높은 생존율을 보이는 암이다. 때문에 유방암 환자는 치료 후 관리가 특히 중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유방암 환자들은 수술 후 관리를 위해 생약 성분약을 찾는다. 통계에 따르면 유방암 환자의 3분의 1정도가 수술 후 생약 성분의 약을 먹는 것으로 파악됐다. 천연 물질은 몸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 독한 호르몬치료와도 궁합이 맞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항호르몬제·생약성분 반작용 규명···"장기복용시 권고사항 필요"
유방암 전문가인 박경식 건국대학교병원 외과 교수[사진]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생약 성분과 항호르몬제의 궁합에 물음표를 던졌다.
박 교수 연구팀은 최근 대표적인 유방암 세포주(MCF-7, T47D, ZR-75-1, BT474)에 항호르몬제 성분인 '엔도시펜(Endoxifen)'과 여성들의 갱년기 증상 완화에 좋다고 알려진 생약 성분 '에모딘(Emodin)'을 병합해 투여했다.
그 결과, 유방암 세포주 MCF-7, ZR 75-1에 항호르몬제만 투여했을 때와 비교해서 암세포 억제 능력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세포의 단백질 단위까지 변화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생약추출물이 오히려 유방암 항호르몬제 치료 효과를 저하시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환자들이 자주 물어보는 것이 곧 연구주제입니다. 기본적인 출발점은 ‘환자와 상담할 때 얼마나 구체적이고 정확한 연구에 기반해 답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박 교수를 찾은 많은 환자들이 그에게 물었다. “항암치료 중인데 하수오나 백수오를 먹어도 괜찮을까요?”
그러나 교과서에 나와있는 내용은 한정적이었다. 박 교수는 환자들에 대한 본인 스스로의 답변이 불만족스러웠다. 단순히 “간 수치가 좋지 않아 복용하는 것을 추천드리지 않습니다”는 대답으론 미진했다.
복용이 안 된다면 언제까지인지, 먹는다면 얼마 만큼의 양을 복용해야 하는지, 모든 생약 성분의 약을 먹으면 안 되는지, 또 한약은 복용해도 되는지 등등. 권고사항이 없는 상황에서 박 교수는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싶었다.
이렇게 시작된 연구의 전제는 생약 성분-항호르몬제의 ‘시너지 효과(병합효과)’였다. 유방암 치료를 받은 환자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한 최선의 복용법을 제시하고 싶었다.
“생약 성분인 ‘에모딘’은 많은 항암치료 환자들이 찾는 보조제입니다. 많은 암환자들이 생약 성분의 건강기능식품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생약 성분이 항호르몬 치료에 도움이 될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연구 결과는 정 반대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의학연구 중에서 원래 연구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를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치료약을 개발하려던 연구가 오히려 독극물로 개발된 사례도 있다.
박 교수의 이번 연구도 본 취지와는 다른 뜻밖의 결과가 나온 경우로부터 시작했다. 항호르몬 치료제에 이모딘을 섞어 봤더니 의외로 안타고니스트 이펙트가 나온 것이다.
처음 결과를 접한 박 교수도 의아했다. 그리고 연구를 이어갔다. 논문으로 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 약물을 바꿔가며 세포군 4개 이상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이번 연구는 유방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것입니다. 하지만 유방암과 자궁내막암 위험이 있는 환자들이 약을 쓸 때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건강관리를 위해 생약을 쓸 때 보다 안전성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경식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가 생약 성분 제제를 장기간 복용하려는 환자들에게 참고가 될 수 것으로 내다봤다. 대표적인 생약 성분인 한약 복용 시에도 안전한 복용량과 기간을 정할 수 있다.
또 생약 성분 제제는 일반적으로 오랜기간 복용하는 특징을 지닌다. 장기간 복용할 때는 간질환과 혈전 질환 등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다만 박 교수는 "이번 연구가 권고사항의 ‘근거’가 아닌 ‘참고’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명확한 검증을 위한 임상연구가 이뤄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생약 성분 제제의 경우 용법과 용량에 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며 “실제 약제를 사용한 임상연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 단계에서도 연구 지원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의외의 성과는 의외의 발상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지원 체계는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연구비 문제는 언제나 고민거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향후 임상연구를 진행할 생각이 있는 가란 질문에 그는 "여러 가지 여건이 받쳐준다면 계속 더 진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실 박 교수는 지난 11년간 연구비를 따지 못했다. 연구계획서가 부족했다기보다는 경쟁률의 문제다. 이번 연구 역시 박 교수 사비로 진행했다.
의학연구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투자도 확대됐다. 생애 첫 연구 지원을 비롯해 여성과학자 지원 등 다양한 제도가 생겼다.
그러나 연구 욕심이 많은 의사들 수에 비해 연구비 지원 규모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 박 교수 입장이다.
"특히 발상(아이디어) 단계에서 지원하는 방안이 적극 고려해볼만 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가 일하는 건국대학교병원의 경우엔 환자 빅데이터가 구축돼 있어 연구에 참고해 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여건에 놓인 의사들은 발상에서 멈추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연구자를 위해 익명화 된 공공기관 의료빅데이터가 제공되지만, 이를 활용하기 위한 진입장벽은 높은 것이 현실이다. 박 교수는 “이러한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선 별도 교육이 필요한 수준이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연구들을 살펴보면 메타분석(유사한 축적 연구 논문들을 분석)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아이디어가 풍부한 이들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덜고 그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용이한 빅데이터 풀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정연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