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수도권 유일 '다인용 고압산소치료기' 도입'
손창환 교수(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2019.12.26 06:02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고가 의료장비를 도입, 운영하기 위해선 병원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수가체계가 기본적으로 빈약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소위 ‘빅5’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서울아산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아산병원(원장 이상도)은 금년 7월 다인용(10인용) 고압산소치료설비(고압산소챔버)를 도입했다.

서울·경기권에서 1인용이 아닌 다인용 챔버를 도입한 것은 처음이다. 전국적으로도 다인용챔버를 도입한 의료기관은 12월 현재 서울아산병원을 포함해 13곳에 불과하다.


기압이 높은 방 안에서 고농도의 산소를 흡입하는 고압산소요법은 대표적으로 일산화탄소가스 중독 치료에 사용된다. 연탄가스 중독이 대표적인 원인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연탄중독?’ 이라며 일부에선 고압산소챔버에 대한 수요가 높은지 물음표를 던진다.


서울아산병원 고압산소챔버 전담의인 손창환 응급의학과 교수[사진]는 “생활상의 변화로 일산화탄소중독환자가 적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다양한 원인으로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병원으로 이송되는 중증환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일산화탄소는 폐에서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일산화탄소헤모글로빈을 형성한다. 일산화탄소가 헤모글로빈과 결합하는 속도는 산소보다 250~270배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혈액 산소 운반능력이 상실되고 내부적 질식상태에 빠지는 일산화탄소 중독에 이르게 된다. 공기 중 일산화탄소 농도가 30% 이상인 곳에서 30초 동안만 숨을 쉬어도 혈중 일산화탄소량이 치사량을 넘는 75%까지 올라간다.


의식이 혼수상태에 빠지면 저산소성 뇌손상과 같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때문에 중증 중독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는 가능한 빠른 시간 내 고압산소치료설비를 통한 고농도의 산소 공급이 요구된다.


손창환 교수는 “응급상황은 물론 신경학적 증후군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일산화탄소 중독에 대한 고압산소치료는 필수적”이라며 “특히 중증환자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권역별로 다인용 고압산소치료설비가 반드시 구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릉 펜션 고교생 참사로 '일산화탄소 중독 치료' 중요성 부각···번개탄 자살시도 급증 


그동안 학회에서도 생소했던 고압의학이 크게 이슈가 된 것은 지난해 ‘강릉 펜션 고교생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가 발생하면서다.


수능시험을 마치고 강릉의 한 펜션을 방문한 서울 대성고 남학생 10명이 집단으로 일산화탄소에 중독됐다. 경찰조사 결과, 원인은 가스보일러와 배기구를 연결하는 연통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가스가 누출된 것이었다.


손 교수는 “누구나 일상 속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일산화탄소 중독을 겪을 수 있다”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2008년부터 2014년 사이 서울아산병원 내원환자를 분석한 결과, 숯불(난방) 및 연탄난로, 가스보일러, 장작 아궁이가 비의도적 일산화탄소 중독의 원인이 됐다.


손 교수는 "강릉 펜션 사고처럼 가스보일러 배관 문제는 물론 캠핑문화가 확산되면서 텐트 안에서 인공숯을 피우다가 중독되는 경우, 숯가마에서 장시간 있다가 중독되는 경우,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고깃집에서 갈탄에 고기를 구워먹다가 중독되는 경우 등 다양한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가스안전공사가 소개한 사례 중에는 겨울철 고드름이 아래층으로 떨어지면서 보일러 연도가 이탈, 중독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산화탄소 중독사고가 늘어난 더 큰 원인은 따로 있다.

손 교수는 "이처럼 비의도적인 사고도 많지만, 최근 심각성이 더해지는 것은 의도적인 중독"이라고 밝혔다.


바로 번개탄 중독을 통한 극단적 선택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약 10년 전 탤런트 안재환씨가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1% 미만이었던 비중이 1년 만에 무려 5%까지 늘어났다.


손 교수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현대인의 극단적 선택은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며 “안타까운 목숨을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선 병원이 이와 같은 시대 변화를 읽고 충분한 의료설비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인용 고압산소치료기 절대 부족해 중증환자라도 수십km 떨어진 병원으로 전원


그는 특히 "1인용이 아닌 다인용 고압산소챔버를 구비한 병원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우려감을 표명했다.


의식이 없는 중증환자는 여러 명의 의료진과 침대가 챔버 안에 같이 들어가야 한다. 1인용 챔버 공간만으로는 부족하고 다인용 챔버가 필요하다.


그러나 서울 및 수도권에서 다인용챔버를 소유한 병원은 서울아산병원이 현재로선 유일하다. 지방도 12곳 중 2곳은 군용 병원으로 민간인은 이용할 수 없는 등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손 교수는 “만약 일산에서 중증환자가 발생한다면 40km되는 거리를 달려 내원해야 하며, 고압산소치료기가 한 대도 없는 전라북도의 경우 전남 등 다른 도(道)로 환자를 전원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지역의 경우 금년 9월 고양시에 소재한 명지병원이 다인용 고압산소치료기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지자체와 의료기기회사와의 조율이 길어져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기 고가인데 턱없이 낮은 수가···전담인력 24시간 배치 서울아산병원도 온콜 인건비 '적자' 


병원들이 쉽사리 다인용 고압산소챔버를 구비하지 못하는 데는 수가문제가 있다. 고가의 기기 값에 비해 기본적으로 낮은 수가가 책정돼 있는 상황에서 이를 운영하기 위한 인력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간호사 3인과 기기를 작동하는 오퍼레이터 1인, 그리고 손 교수가 전담인력으로 배치돼 있다. 중증환자 집중 케어 및 연속진료가 24시간 가동되는 체제다. 응급환자가 발생한 야간 온콜에서는 손 교수와 간호사, 오퍼레이터가 동원된다.


고압산소치료 수가는 현재 2시간에 약 20만원이 책정됐다. 온콜 수당만 해도 병원 입장에선 적자를 보게 되는 것이다.


손 교수는 “고압산소치료 수가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1만5000원 수준이었는데 학회의 지속적인 의견 피력으로 그나마 이 정도 수준으로 인상됐다”면서도 “그러나 아직도 많이 부족한 상황으로 행위수가에 대한 현실적인 반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압산소치료, 응급한자 뿐 아닌 만성환자에게 치료효과 입증 사례 늘어"


현재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중증환자 외 만성병 치료에도 고압산소 치료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만성치료에 관한 고압산소 치료 효과는 다년간 국제학회에서 검증됐다"고 손 교수는 소개했다.


손 교수는 “압궤손상, 구획증후군, 기타 급성외상성 허혈, 강맙병, 망막 동맥 폐색증, 당뇨병성 족부 궤양,  중증 빈혈, 뇌농양, 괴사성 연조직 감영, 난치성 골수염, 지연된 방사선 손상, 피부이식, 피판술, 화상, 돌발성 난청 등 다양한 치료에서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일명 ‘당뇨발’로 불리는 당뇨병성 족부궤양은 당뇨환자들의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으로 상처가 잘 낫지 않게 되면 절단까지 갈 수 있어 제대로 된 상처치료가 중요하다”며 “미국, 유럽, 일본에서는 당뇨발에 고압산소치료는 치료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아 오래 전부터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실제 임상현장에서 고압치료 효과를 더욱 실감할 수 있다. 그는 “지난 주 고령의 환자가 혼수상태로 이송됐는데, 고압산소 치료를 2~3회 실시 하면서 의식이 깨어났고 5회차 치료를 했을 때는 걸어서 나갔다”고 소개했다.


이어 “만성질환도 마찬가지로, 당뇨발 위험성이 높았던 환자가 절단까지 이르지 않고 퇴원한 경우가 있다”며 “이런 임상사례를 경험할 때는 의료진으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아산병원 통계에 따르면 고압산소 치료를 받은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은 국내 평균 대비 약 3배 높아졌다. 중증환자의 초기 적극적인 치료가 가능해지면서 환자 예후도 향상된 것이다.


손창환 교수는 “고압산소 치료의 중요성은 환자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의료진이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의료기관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충분한 인프라 형성을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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