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료 '흔들'···환자도 의사도 떠나는 안타까운 '현실'
'기왕이면 큰 병원' 수도권 쏠리는 의료 불균형→'전문인력 불균형' 초래
2019.11.14 05:41 댓글쓰기

2019년 후반기 전공의 모집에서는 과거보다 한층 심화된 ‘서울’ 쏠림현상이 고스란히 확인됐다. 데일리메디가 전국 주요 수련병원의 전공의 모집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방 수련병원들 고충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지방 수련병원들의 속앓이가 이제는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라는 얘기까지도 나온다. 이처럼 환자들뿐만 아니라 젊은 의사들의 서울行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의료인력 유출에 대학병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편집자주]
 

과거보다 한층 심화된 ‘서울’ 쏠림현상은 2019년 후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데일리메디가 전국 주요 수련병원의 2019년 후반기 전공의 모집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방 수련병원들의 고충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실제 경상대병원 5명 모집에 0명, 고신대병원 5명 모집에 0명, 대구가톨릭대병원 5명 모집에 0명, 부산대병원 2명 모집에 0명, 영남대병원 9명 모집에 0명 지원을 기록하면서 지방병원의 비애를 실감케 했다.

울산대병원 역시 11명 모집에 0명, 제주대병원 3명 모집에 0명, 조선대병원 5명 모집에 0명, 충남대병원 4명 모집에 0명 지원으로 ‘0의 행렬’을 이어갔다.

강릉아산병원도 5명 정원에 1명, 동아대병원 14명 정원에 3명, 삼성창원병원 4명 정원에 2명, 양산부산대병원 7명 정원에 2명, 원광대병원 8명 정원에 1명, 인제대 부산백병원 11명 정원에 2명, 전남대병원 6명 정원에 1명이 문을 두드린데 그쳐 겨우 지원율 제로라는 꼬리표만 간신히 면했다.

울산 지역 대학병원 교육수련팀 관계자는 “불과 수 년 전만 해도 거주 지역 내 대학병원을 갈지, 서울 대학병원으로 유학을 갈지 고민했지만 요즘은 그런 풍경이 싹 사라져버렸다”고 씁쓸해 했다.

이어 “환자만 서울로 쏠리는 것이 아니라 전공의도 서울行을 택하고 있다”며 “정부는 의료전달체계 정립을 위해 전방위로 정책을 내놓는다고 하더니 오히려 양극화만 심화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지방대병원이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지는 이미 오래다. 인턴, 레지던트의 절대 다수가 자교 출신 의대생들로 채워지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이고, 이제는 정원조차 채우지 못해 신음하고 있다.

일례로 상급종합병원 지정에서 탈락했던 울산대병원 여파로 울산지역 전체가 울상을 짓고 있다. 앞서 울산대병원은 제3주기(2018년~2020년) 상급종합병원 지정에서 탈락해 상급종합병원에서 종합병원으로 격하됐다.

의사인력과 교육 점수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화살은 돌고 돌아 전공의 정원 미달로 향했다.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병원들은 앞으로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화될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서울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사 지명도를 떠나 병원 브랜드만 믿고 내원하는 지방환자 비중이 다소 커졌다”고 귀띔했다.

대구의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심장 스텐트 등 간단한 시술은 지역에서도 충분히 가능한데 비용 부담이 덜해지자 무작정 서울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겠다는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며 “KTX 개통 악재까지 겹쳐 경영 악화가 우려된다”고 털어놨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방대병원에 기피과라는 꼬리표까지 붙으면서 흉부외과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부산 소재 대학병원 한 교수는 “기피과 수가 인상으로 숨통이 트이는가 했지만 복지부 묘책 역시 약발이 먹히지 않아 흉부외과의 양극화만 갈수록 극명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흉부외과 수가 인상이 가져온 전국 주요 대학병원의 쏠림 현상은 레지던트 부족 현상으로 고스란히 ‘대물림’됐다는 것이 이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그는 “전국의 심장 수술을 비롯해 흉부외과 진료의 70% 가량을 독식하고 있는 일부 병원이 전공의들까지 빨아들이고 있다”며 “흉부외과 수가 인상 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형병원이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전공의를 싹쓸이 한다면 지방 병원들은 아예 수련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전남 지역 흉부외과 한 교수도 “흉부외과를 전공하더라도 일자리가 부족하고, 개원도 하기 어려운 미래의 불안감 때문”이라며 “수가 100% 인상 및 보전 조치의 혜택은 수도권 일부 대형병원에 이뤄지고 지방병원에 대한 혜택은 미비해 지원자가 전멸할 정도”라고 말했다.

일부 수련병원에서는 흉부외과와 외과 전공의가 부족해 4년차 전공의가 휴일까지 반납하고 야간근무를 책임지는가 하면 60대 흉부외과 교수가 이틀마다 24시간 진료를 하기도 한다.

그는 “지방대학이나 중소병원들은 흉부외과 자체를 운영하기도 벅찬 상황”이라면서 “흉부외과 지원을 위해서는 전공의만의 처우개선이 아니라 전문의가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며 정책 개선을 주문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의료를 살릴 인력이 갈수록 유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적 지원이 수도권에 집중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지방 대학병원들은 박탈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적정 수가가 보장되지 않는 구조에서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전환은 비인기과와 지방병원을 더 외면케 만들 것으로 전망된다.

경남 소재 한 대학병원 교육수련부장은 “환자 뿐 아니라 의사들까지 빅5 병원으로 몰리는 현실의 최대 피해자는 단연 다 키운 자식을 빼앗기는 지방대학병원들”이라고 성토했다.

지방병원 대부분 의사인력 수급 '시름'···지역의료 위기 '바로미터'

“지도를 놓고 자세히 들여다보자. 오히려 상급종합병원 제도가 지방 중증환자의 서울과 수도권 쏠림을 부추기고 있다. 지방에서는 경증환자만 진료하라는 의미와도 같다.”

그 가운데 얼마 전, 대학병원 교수와 지역 개원의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오는 2020년 실시되는 4주기 평가에서 울산시에 상급종합병원이 지정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호소다.

전국 7대 주요도시 중 유일하게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울산광역시. 그로 인해 120만 울산 시민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며 울산대병원이 상급종합병원 재지정을 촉구하고 있다.

울산대병원 정융기 원장은 “지난 3주기 평가 당시 상급종합병원에서 제외된 후 우려했던 지역 내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지고 있다”며 “지역환자의 역외 유출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답함을 피력했다.

정부가 2011년 도입한 상급종합병원 제도는 의료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환자 진료비 부담을 경감시키고자 경증환자는 1, 2차 병의원, 중증환자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제도는 또한 해당 진료권역에 지역거점병원을 육성해 지방환자의 서울과 수도권 쏠림을 막기 위한 의미도 담고 있다.

하지만 정 원장은 “중증환자의 원정 진료에 따른 불편과 경제적 손실 등 그 피해를 환자와 가족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상급종합병원은 10개 진료권역에 42개 병원이 운영되고 있다. 그 중 절반인 21곳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됐다.

유출되는 중증환자 대부분이 서울로 향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고 한숨을 내쉰다.

결국 의사인력과 전공의 수급 어려움은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녹록치 않게 만들고 악순환은 계속된다. 사실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병원 대부분이 의사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원도의 경우, 보건복지부로부터 배정된 전공의 수도 인구 1만명당 0.57명으로 서울 2.47명, 전국 평균 1.27명에 턱없이 부족하다.

지방대학육성법에 따라 지방대 의과대학에서는 15% 이상을 해당 지역 고등학교 인재를 선발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기준을 지키지 못한다.

“3년마다 실태조사”···벌어지는 격차 해소 관건

일각에서는 국민 기본권인 건강에 대한 권리마저 지방에 거주하면 차별을 받게 된다고 울분을 토로한다. 연간 국민건강보험 급여비만 1조원을 청구하는 거대 병원 5곳이 모두 서울에 있다.

이들 거대 병원과 지방대병원들 간 격차는 병원 규모나 장비 차이를 넘어 수술 성공률과 각종 질병 사망률의 차이로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지키고 좋은 진료를 받으려면 KTX를 타고 서울까지 다녀야하니 지방 환자들의 수도권 병원 진료비만 연간 2조1100억원에 이른다.

현재 국회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은 시도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종필 의원(자유한국당)은 최근 보건의료인력지원법안을 대표발의하면서 제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내놨다.

골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건의료인력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3년마다' 실태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한 후 공표토록 하자는 것이다.

의료기관 양극화 및 지역별 ‘쏠림’ 현상으로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경우에는 의료인력 수급조차 원활하지 못해 의료서비스 제공에 있어 심각한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윤 의원은 “지방 의료기관은 여전히 보건의료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수급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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