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넘어 전세계 간이식 새로 쓴다'
송기원 교수(서울아산병원 외과)
2019.09.15 18:57 댓글쓰기

간이식에 빠진 성실함과 뚝심의 의사


송기원 교수는 세계 최고의 간이식팀으로 불리는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에서 20년째 몸담고 있다.

정확하고 예리한 판단력으로 간이식 수술 후의 환자들의 상태를 판단하고 그 처치에 항상 적절한 아이디어를 제공함으로써 단연 간이식수술 후 환자 관리에 있어 최고 1인자로 인정받고 있다.
 

송 교수의 원래 꿈은 암 치료 의사였다. 이왕이면 세계 최고 암센터가 있는 미국으로 가서 공부할 계획이었다. 공보의 2년 차 때 우연히 ‘사선(死線)에 선 생명’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수술실에서 뇌사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의 간 일부를 말기 간암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생체 간이식 수술이었다. 그때 본 장면을 잊지 못해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에 자원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언제 밥을 먹고, 언제 잠을 자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환자에게 매달리는 선배들을 보며 송기원 교수 역시 개인 생활을 반납하고 성실함과 뚝심으로 진료 및 연구에 매진했다.


어느 날 간이식·간담도외과 이승규 석좌교수가 송기원 교수를 호출했다. 어렵게 말 문을 여셨다. “ABO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 수술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혈액형 부적합 수술은 지난 2007년 국내에서 이미 한 차례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성적이 좋지 않아 누구도 다시 도전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힘들겠지만 도전해보겠다고 답한 후 당시 전세계 혈액형 부적합 생체 간이식의 선발주자였던 일본 교토대학으로 견학을 갔다. 낮에는 수술을 참관하고, 밤에는 낮에 본 수술을 떠올리며 밤새워 공부를 했다.

혈액형 부적합 수술에 필요한 특별한 면역억제제 기법을 알아내려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그의 뚝심에 일본 의사들은 논문을 건네주거나 앉아서 하나 하나 설명해줬다. 그렇게 3박 4일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쯤 그의 손엔 8장의 A4 용지가 들려 있었다.


겨우 사흘을 견학하고 왔을 뿐인데 그 이후 결과는 창대했다. 누구도 수술 후 관리가 어려워 감히 나서지 못했던 혈액형 부적합 생체간이식수술을 일본보다 먼저 쉽고, 안전하게 정착시키는 데 일조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서울아산병원만의 프로토콜을 만들어 소위 '한국형 수술'을 세팅해 나갔다.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 수술은 수술만큼 수술 후 관리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는 특유의 집중력과 끈기로 첫 수술 시작 1년 만에 안전하게 혈액형 부적합 수술을 정착시켰다.


미국 스탠포드병원서 송기원 교수에 생체간이식 의뢰


올해 초인 2019년 2월. 미국의 손꼽히는 대학병원에서도 치료가 어려워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웠던 간경화 환자가 국내에서 생체간이식 수술을 받고 두 달 동안의 치료 끝에 건강을 회복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검색엔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던 찰스 칼슨(CHARLES CARSON, 47세 남성)씨는 2011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간경화와 골수 이형성 증후군을 차례로 진단받았다.

골수 이형성 증후군은 조혈모세포 이상으로 혈소판, 백혈구 등의 혈액세포가 줄어 면역기능 이상, 감염, 출혈을 일으킬 수 있고 만성 백혈병으로 진행하게 되는 매우 위험 질환이다.


칼슨 씨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 골수 이형성 증후군 항암치료를 10회 이상 진행했지만 간 기능이 더 나빠져 더 이상 치료를 진행할 수 없게 되자, 간 질환 치료를 위해 미국 장기이식 네트워크(UNOS)에 뇌사자 간이식 대기자로 이름을 올려뒀다.

그러나 긴 대기 시간이 문제였다. 뇌사자 간이식을 받게 될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가운데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갔고 간 질환으로 인해 골수 이형성 증후군에 대한 항암 치료를 이어가지 못해 칼슨 씨의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칼슨 씨가 다시 건강해질 수 있는 기회는 살아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기증받는 생체간이식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송기원 교수는 “당시 우리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체 간이식 경험이 적은 미국의 모든 간이식센터에서는 동반된 골수질환 때문에 수술 후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며 수술을 꺼려했다”고 말했다. 자칫 수술 후 매우 사소한 수술 합병증이 발생하더라도 환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재미교포로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 간을 전공하고 있는 교수가 칼슨 씨에게 “생체간이식은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앞서 있다”며 서울아산병원을 추천했다. 칼슨 씨 역시 5000 건 이상 세계 최다 생체간이식 기록뿐만 아니라 간이식 1년 생존율이 97%로 미국의 89%를 넘는다는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의 실적을 찾아보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 후 지난해 12월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칼슨 씨의 간이식 수술을 진행했다. 기증자는 부인(헤이디 칼슨, HEIDI CARSON, 47세)이었다. 기증자에게는 최소 절개 기법을 이용해 복부에 10cm 정도의 작은 절개부위만 내어 흉터와 합병증 가능성을 최소화 했으며, 아내의 간 62%를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절제했다. 


골수기능에 문제가 있고 예상보다 이식 받은 간 기능이 빨리 회복이 되지 않았던 칼슨 씨는 수술 후에도 위험한 순간들이 간헐적으로 발생, 오랜 기간 중환자실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서울아산병원 의료진들의 헌신적이고 적절한 치료 덕분에 고비를 잘 넘겼다. 금년 2월 중순부터는 일반병실에서 회복하며 아내와 함께 지낼 수 있었다.
 

송 교수는 “환자를 처음 의뢰받았을 때에는 간경화로 인해 복수가 많이 차있었고, 여러 차례 항암치료를 받아 많이 쇠약해진 상태여서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었지만 환자와 가족들이 본인 병에 대한 이해가 깊고 워낙 치료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외과의사 되고 싶다"

현재 서울아산병원은 암, 장기이식, 심장병 등에 걸쳐 매년 6만5000여 건의 고난도 수술 및 치료를 시행하면서 중증환자들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서울아산병원은 3차 종합병원에서도 치료하기 어려운 수술을 의뢰받아 완치시키는 병원이라는 뜻으로 소위 `4차병원`이라는 명예스러운 별칭도 얻었다.
 

서울아산병원의 암 수술·치료 경험은 국내 최고 수준으로 2018년 1만9748건을 기록했다. 특히 송기원 교수를 주축으로 실력 있는 의료진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보니 장기이식 수술은 서울아산병원이 세계를 이끄는 분야다.

지난 해에는 세계 최초로 생체 간이식 5000례, 2대1 간이식 500례 기록을 달성했다. 간이식 1년 생존율은 97%로 장기이식 선진국인 미국의 89%를 뛰어넘는다.


일반적으로 장기이식은 의료 기술 중에서도 가장 고도화된 술기다. 술기를 비롯해 인력, 최첨단 장비 등 여러 요건들이 충족이 돼야만 정착이 지속적인 발전도 가능하다.


송 교수는 “우선 가장 중요한 요건이 일단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자질이 갖춰지고 훈련된 인력이 확보돼야 한다는 점”이라고 환기시켰다. 여기에는 외과의사 뿐만 아니라 관련된 타 과 의료진과 간호인력 역시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는 현재 큰 꿈이 있다. ABO 생체간이식이 국내에서 정착되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에서 인지 자부심이 크다.


그는 “학문적으로는 간암 환자의 재발률을 낮출 수 있는 연구에 집중하고 싶다”며 “장기적으로는 좋은 외과의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은퇴를 하면서, 본인이 과연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외과 의사로 남을 것인가로 질문을 던져 본다는 송기원 교수. 그는 “무엇보다 환자들이나 환자 가족들에게 기억에 남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 희망이라고 소박하지만 단단한 메시지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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