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의사 과로사 방지, 특단 대책 절실”
백성주 데일리메디 차장
2019.07.09 11:00 댓글쓰기

퇴근도 못하면서 연중으로 환자를 돌보다 뇌출혈로 쓰러져 자신이 일하던 병원 중환자실에 1년 여 입원 중인 서울 유명 대학병원 S교수의 소식이 안타깝게 회자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도권 다른 대학병원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 듣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고(故)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 순직에 이은 인천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근무 중 사망 비보(悲報)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과로가 입원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 사회에선 희생과 봉사, 사명감이라는 알량한 허울을 벗고 내 생명부터 돌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지 오래다.

올해 대한중환자의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일부 공개된 199명의 중환자실 전문의 대상 근무실태 조사는 충격적이다.

외래진료 등 다른 업무를 겸하게 되면서 주 50시간 이상 60시간 이하 근무자는 전체의 22%, 60시간 이상 근무는 32%에 달했다.

이들에게 중환자실 밖 근무는 오히려 다행이다. 융통성을 갖고 근무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덕분이다.

반면 긴 시간 중환자실에 들어가 모든 진료과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전문의들은 과부화가 걸린다. 쉬는 시간은커녕 퇴근도 기약할 수 없다.

홍성진 대한중환자의학회장(여의도성모병원 마취통증 의학과)은 “젊었을 땐 열정으로 버텨왔지만 결국 과중한 업무로딩으로 '번아웃(Burn out)' 된다. 현장 상황에 전혀 맞지 않은 인력기준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직이나 연장근무 등으로 피곤한 상태에서 다시 환자를 마주할 때면 ‘내 수명을 환자에게 나눠주는 것 같다’는 어느 응급의학과 교수의 말은 열악한 환경을 그대로 대변한다.

이는 교수들의 진료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의료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의료진 과로는 서비스 저하로 이어지고 결국 사고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건강에 적신호를 보인 의사들이 늘면서 학회가 사태 해결에 나섰다. 회원을 대상으로 ‘번아웃’ 실태와 함께 외국 사례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정부가 응급실과 중환자실의 인력확충, 필수처치, 안전강화 등 지원을 결정했다.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환자·의료인 안전 등을 개선하는 내용도 함께 검토키로 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희생 없이 응급실·중환자실이 운영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만은 여전하다. 발표된 지원책은 비급여의 급여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치 않도록 유지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중환자실 대부분에선 간호사 1명이 환자 3명을, 의사 1명은 30명에 가까운 중환자를 담당한다. 간호사 1인당 환자 1명, 의사 1인당 환자 2명을 담당하는 일본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마저도 최근 중환자 전담의 개선안 등이 적용된 결과다. “중환자실은 우리들(전문의) 생명을 연료로 움직이는 구급차가 아닌가 싶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갖는다.

홍상범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 부실장은 “현 의료시스템에서 중환자 의사는 과로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80시간 근무 전공의법처럼 중환자실 의사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정부나 시민단체도 이 같은 열악한 사실에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으로 연결되기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전담전문의에 대한 충분한 대우 및 적정수가 보장, 근무조건 개선은 중환자실 전문인력 확보뿐만 아니라 환자 생존율 향상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다. 아니 필수불가결한 선행 조건이다.

오늘도 라디오에선 고(故) 임세원 교수와 고(故) 윤한덕 센터장을 언급하면서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켜온 의료인의 헌신과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국민건강보험 공단의 광고가 흘러 나온다. 의료진들의 헌신과 희생에 덧붙여 정책적 지원이 병행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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