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전달체계 개선과 교수 의사노조 그리고 의협
정승원 기자
2019.06.17 10:41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정승원 기자/수첩]한 환자가 동네의원에서 암 진단 소견을 받았다. 의사는 환자에게 인근 종합병원으로 진료의뢰를 해주겠다고 했고, 혹시 더 큰 병원으로 가고 싶다면 역시 주변 상급종합병원으로 의뢰해주겠다고 말했다.
 

두 병원 모두 진료의뢰를 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진료가 가능한 곳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환자는 의사가 말한 두 병원 모두를 거절했다. 환자는 빅5 병원 중 한 곳인 S병원 교수에게 한 달을 기다려 진료받는 것으로 정했다.


이 사례는 최근 내과의원 원장들과의 저녁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다. 이 내용을 소개한 원장은 “설마 설마했는데 한 달을 기다려 빅5병원에서 진료를 받겠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처럼 한국에서 대형병원을 이용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위 사례처럼 암환자의 경우 일명 4차 병원으로 불리는 빅5 병원을 선호할 수 있다.하지만 문제는 암보다 훨씬 경증질환인 경우에도 빅5를 포함 큰 병원부터 찾는 사례가 허다하다. 아니 관행화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응급실은 물론 외래로도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문턱이 낮아 환자들이 아프면 큰 병원부터 찾고 보는 것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이하 전의교협)는 최근 열린 춘계 학술세미나에서 의사노조를 안건으로 정하고 토의를 진행했다.


전의교협이 생각하는 의사노조 필요성은 일반 노동조합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보통 노조가 근로조건 개선을 도모한다면 의사노조는 그보다는 노동자의 3대 권리 중 하나인 단체교섭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권성택 전의교협 회장은 “일반 교수들 의견을 모아 병원에 전달하더라도 어떤 효력이 없다”며 “그런데 노조를 구성해 교섭권을 얻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의사노조가 구성돼야 대형병원에서 감기환자를 보지 말 것을 병원 측에 요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의사노조 필요성도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이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의료계의 해묵은 과제다. 대한개원의협의회도 최근 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대한의사협회에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를 시작하라고 공식 요청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방안은 지난해 합의 직전까지 갔지만 단기입원을 둘러싼 의료계와 병원계 입장 차이로 무산됐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 무산 후 대형병원 쏠림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최근 3년 간 상급종합병원 총 진료비 현황 자료에 따르면, 42개 상급종합병원의 총 진료비 14조670억원 중 빅5 병원의 진료비는 34.51%인 4조8559억원에 달했다.


의원이나 중소병원보다 상급종합병원을, 그 중에서도 서울대, 아산, 삼성, 세브란스, 서울성모 등 빅5 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은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우려하는 일이다. 중증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인력들이 경증환자에게까지 분산되니 병원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다.


서울 소재 빅5 병원의 한 교수는 “대형병원이라고 환자가 몰리는 것을 반가워 하지는 않는다. 의료전달체계 대로라면 지방 환자는 지방에서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정부도 의료전달체계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강립 신임 보건복지부 차관은 복지부 출입기자협의회와의 간담회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김 차관은 “의료이용 행태 변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의료소비자들이 적정한 의료서비스를 적정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렇듯 커지고 있는 목소리 속에서도 잠잠한 곳은 대한의사협회다. 의협 역시 의료전달체계 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공감하고 있지만 논의 시작을 위한 불씨를 당기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의협이 출범시킨 의료개혁쟁취투쟁위원회의 목표에는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당장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해 끝내 좌절된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에서 의료계는 내부 의견을 한 데로 모으지 못했다. 집중력과 구심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외과계와 내과계 의견이 나뉘었고, 의료계와 병원계 의견이 평행선을 그으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의료전달체계는 의료계 내부적으로도 직능 및 종별에 따라 입장이 첨예하게 다른 만큼 진중한 논의와 함께 한 발씩 양보하는 협의가 필요하다. 마침 정부는 지난번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에서 무산된 부분을 중심으로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논의를 지체할수록 대형병원 쏠림현상은 가속화되고 심화될 뿐이다. 이제 의협이 먼저 나서 의료계의 뜻을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의사협회 회원들인 동네의원들이 더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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