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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구태(舊態) ‘갑질’
안순범 데일리메디 대표
[ 2019년 01월 12일 06시 35분 ]

축적(蓄積)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요즘 높아지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지식, 경험, 자금 따위를 모아서 쌓음, 또는 모아서 쌓은 것을 의미한다.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이 집필한 한국산업의 미래를 위한 ‘축적의 시간’과 같은 학교 이정동 교수의 ‘축적의 길’이 출간되면서 더욱 중요성이 커지는 분위기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식, 기술 등 전반적 분야에서 아직은 선진국과 차이가 난다. 패스트 팔로어(Fast fllow. 추격자) 전략을 극복하고 퍼스트무버(First mover. 선도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축적의 차별화와 독창성이 필요하다. 미래세대를 위한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이와 상반되는 개념이 있다. 바로 청산(淸算)이다. 요즘 정치적으로 ‘적폐(積弊) 청산’이 화두다. 축적이 잘못된 것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적폐의 사전적 의미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말한다. 이를 뿌리 뽑으려면 조직, 사회, 국가 전반의 전방위적 개조와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인적 책임과 처벌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축적이 기술적, 문화적 흐름이라면 청산은 정치적, 사회적 경향이 강하다. 국가 명운과 존립, 미래 경쟁력이 어떻게 보면 상반되는 이 두가지 개념의 조화와 실천 속에 좌우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측면에서 소위 갑질도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적폐다. 특히 2018년은 갑질과 관련돼서 사회적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킨 사건들이 꽤 많았다. 재벌가 자제 및 대기업 오너들이 연일 뉴스에 올랐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갑질 폐단과 부작용이 드러났다. 포털에서 실시간 검색어로 갑질 사안이 1위를 차지한 사례도 적지 않다.

의료계와 제약계도 갑질과 관련해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간호계 역시 젊은 간호사의 안타까운 자살로 인해 소위 ‘태움’이라는 비인간적 갑질문화가 공론화됐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태움 문화는 그동안 간호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양한 직종이 공존하는 의료기관에서는 철저한 생명 관리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갑질문화가 잔존해왔다. 관행을 핑계로 상급자 등의 가해는 멈추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숨죽여야만 했고 때론 알면서도 외면해야만 했다.

전공의 수련 분야에서도 일반화된 갑질이 횡행했다. 더욱이 사회 지도층인 대학병원 교수들에 의한 갑질도 적지 않게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폭언, 폭행은 다반사였다. 특히 수술방 등에서 은밀하게 이뤄진 성추행, 성폭력은 지탄을 받고도 남는다.

2018년 병원계에서 대표적으로 꼽히는 불미스런 갑질과 폭력, 성추행 사례는 강원대병원 수술실 사건이다. 가장 최근 제주대병원 여교수 사안도 후폭풍이 거세지만 대학이 징계를 미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실 강원대병원 사건은 내용을 접하면 접할 수록 고개가 떨궈진다. 가해자인 교수들이 과연 최고 학부에서 공부한 수재들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의사의 기본 덕목은 ‘인(仁)’과 ‘사랑’, ‘배려’ 등을 갖췄는지도 의문이다.

간호사들에 대해 함께 일하는 동료, 또는 팀원이라는 인식보다는 심하게 표현하면 노비처럼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같은 직역 간 갑질은 무형적으로 환자들에게 최상의 진료서비스 제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원대병원 고충처리위원회는 이와 관련, 간호사들에게 갑질과 폭언을 일삼은 교수와 의료진에게 보직해임 등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또한 간호사들에게 성희롱을 자행한 것으로 지목된 의료진들은 성희롱·성폭력위원회로 사건이 이관돼 재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고충처리위원회 결정은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대학 인사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두고 봐야 한다. 단호한 징계 조치야 당연하지만 이런 비인간적 문화가 수년 동안 자행돼온 상황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의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의료는 진료 및 임상 술기 분야에서 일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 학문적으로도 한국 의사들의 활약상이 5대양 6대주를 넘나든지 오래다. 의료기관 및 의사들은 불만이 크지만 국민건강보험은 전세계적으로 공적보험의 대표적 성공 표본으로 꼽힌다.

그러나 양면적일까. 국민건강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의료계는 저수가라는 딜레마 때문에 내부적으로 불협화음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한정된 건보재정 파이로 인해 한의계를 비롯해 근래에는 간호계, 기사단체 등 타 직역과의 충돌, 대립도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으로 조여드는 상황이 심화되면서 의료계 내부는 물론 다른 단체들과 상호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는 종종 단체 이기주의를 앞세운 '갑질'로 비화된다. 진화론적 측면에서 ‘공진화(共進化)’라는 이론이 있다. 한 종(種)이 진화하면 관련된 다른 종도 함께 진화하는 현상이다. 국민건강 제고와 의료 발전에 수반되는 모든 측면에서 갑질이 아닌 서로 발전하는 ‘공진화 문화’가 2019년에는 보편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dailymedi@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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