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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들과 어려운 길을 동행하면서···"
신진영 교수(건국대병원 가정의학과)
[ 2018년 05월 14일 05시 30분 ]
나는 말기암환자의 통증 조절, 증상 관리를 포함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진료를 하는 의사다. 장수(長壽) 시대라고 하지만 예상 수명을 고려할 때 평생 세 명 중 한 명에서 암이 발생한다. 조기 발견과 치료술이 나날이 발전하고는 있지만 ‘나’와 ‘내 가족’이 어떠한 치료에도 호전이 없게 되면 치료과정 중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내 진료실을 찾게 되니, 이분들이 느끼는 힘든 고통은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첫 번째 환자는 유방암 치료 후 가족을 위해 요리, 빨래 등 그 무엇이든 하고 싶었지만 암이 폐, 뼈, 머리로 전이돼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어지면서 몸 상태가 따라주지 않는다며 마음까지 울적하다던 분이었다.
 
어느 날, 항상 함께 오는 딸이 어머니 모시고 제주도 가족 여행을 가고자 하는데 가능할지 물었다.
 
다녀오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고 최근에는 안정적으로 조절되니, 상비약으로 진통제와 몇 가지 약을 처방했다. 물론 아무 문제없이 잘 다녀오셨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도 증세가 악화될까봐 선뜻 시도하지 못할 때, 가능하도록 돕고 대처할 방법을 알려드리면 많은 분들이 안심하고 여행까지도 잘 다녀오신다.
 
이 분과는 진료실에서 함께 울기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몸에 변화가 생기면 언제나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바로 내원해서 상담을 하곤 했다.
 
덕분에 힘든 증상을 훨씬 수월하게 견딜 수 있다며 고마워했다. 진료실에서 나갈 때는 늘 “선생님은 건강하세요. 꼭 건강하세요”라고 하던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또 다른 말기암 환자 역시 잊을 수 없다. 이제 막 군대를 제대한 젊은이였는데 어느 날부터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있다며 내원해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어머니는 본인 때문이라는 죄책감으로 면담자체를 거부했고, 환자는 어서 빨리 일어나서 여자친구와 결혼해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침대에서 30cm만 몸을 일으켜도 숨이 찬 증상이 나타나 침대 아래로 내려올 수도 없고, 산소 코줄을 빼고서는 단 10초도 있을 수 없었다. 먹는 것까지도 누워서 해야 했다. 너무도 괴로워하는 환자에게 마냥 희망만을 줄 수는 없었다. 다만, 어떻게든 병원 밖을 나가보게 해주고 싶었다. 우선 영화관에 가서 여자 친구와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해서 약제도 조절해보고 휴대용 산소도 알아봤다.
 
그렇지만 주말에 갑자기 악화되어 임종했다. 조금 더 빨리 만나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병에 대해 잘 받아들이기 어려운 젊은 환자, 미성년 암환자를 만날 때에는 정말 마음이 아프다.
 
한편 암환자지만 참 밝고 희망에 차 있는 분도 있었다. 본인이 직접 찾은 네잎클로버를 조금은 투박하지만 정성스럽게 코팅하여 세잎클로버와 함께 어느 날 회진 시 나에게 건넸다.
 
“아니, 이렇게 귀한 것을 저에게 주시나요?”하고 말하자 “나는 또 찾아서 만들면 됩니다”고 대답하던 미소가 아직도 생생하다.
 
통증은 힘들지만 마약성 진통제가 오히려 해롭지 않냐라며 복용을 거부했으나, 적절한 복용법과 환자에게 맞는 약물 처방, 신경병성 통증을 보완하는 약제를 함께 사용하게 했다. 용량이 줄었지만 이전보다 조절은 더 잘 된다며 만족해했다.
 
어느 날 낯이 익은 환자가 진료실에 와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진단에 대해 설명을 했다. 순간, 의무기록을 잘못 불러왔나 싶어 환자의 말을 중단시키고 이름과 등록번호를 확인했다. 그때서야 “아, 저는 OOO환자의 딸인데요. 어머니가 교수님께 호스피스진료를 받다가 1년 반 전에 편안하게 돌아가셨어요. 이제 제가 골육종 진단을 받았는데, 다른 치료는 하지 않고 교수님께 진료받으러 왔어요”라고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많이 놀랐다.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텐데 어려운 결정을 하고 찾아온 분이었다. 우측 위팔의 골육종은 폐(肺) 전이 소견으로 한쪽 폐가 흉수로 숨쉬기가 곤란해지고, 한참 후에서야 통증이 찾아왔다. 흉관 삽입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설득해 증상 완화를 위한 방편으로 제안을 했다. 이후에도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다가 입원 후 큰 고통 없이 자다가 어려운 순간을 맞이했다.
 
사실 나는 진료실에서 환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 분들을 추억하며 ‘환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많이 어색하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그 마지막 어려운 길을 함께 동행하며 나 또한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에 더 없이 소중한 분들이다. 때로는 임종 후에 예약 문자를 보고 찾아오는 보호자들과 함께 추억하고, 다시 희망을 드리는 일이 의사로서 보람되기도 하다.
데일리메디 dailymedi@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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