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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소아외과의사의 숙명
정수민 교수(건국대병원 소아외과)
[ 2017년 12월 17일 21시 00분 ]

지난 2013년도에 인기리에 방영된 '굿닥터'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나는 이 드라마에서 대본 감수와 의학 장면에서 배우들의 술기지도를 했었다. 특히 '문채원'이라는 여배우가 맡았던 소아외과 임상강사라는 배역은 내가 소아외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 지나왔던 과정이라 그런지, 감정이입이 많이 됐었다.
 

실제로 환자 상태가 좋지 않거나, 환자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게 되는 그럴 때에는 정말 드라마 속의 '문채원'처럼 나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이 저려오면서 눈물이 날 때가 많다.

또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 하면 내가 생각한대로, 나의 뜻대로 수술진행이 잘 되지 않을 때이다. 정말로 이럴 때는 내가 바로 지옥불 속에 있구나, 도대체 얼마나 더 지옥불에 떨어져 달구어져야, 지옥불이 지옥불인지 모르고 지나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민스럽다.
 

특히 어렵게 진행된 수술 이후에는 환자가 합병증이라도 생길까봐 늘 노심초사하면서, 환자가 퇴원하는 그 날까지 마음 편히 잠을 잘 수가 없다. 나는 교회를 다니지는 않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입버릇처럼 늘 환자의 무사퇴원을 위해 철야기도를 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항상 최선을 다하지만 늘 좋은 결과만 있는 것 아니어서 힘든 경우 많아"
 

나는 수술장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늘 좋은 결과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 세상 이치인데도 불구하고, 혹시 어느 누구 하나라도 좋지 못한 치료 결과가 있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다.

해도 해도 안 되고 꼬이는 환자들을 볼 때는 가끔 어떤 알 수 없는 기운이 이 환자를 자꾸 데려가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늘 내 손을 빌어서 또는 나한테 와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각오로 지낸다.
 

이런 괴로움과 불안증이 너무 심해서 은퇴한 여자 소아외과 교수와 상의한 적이 있다. 나이가 60이 넘어서도, 환자 때문에 심장이 바닥으로 쿵쿵 떨어지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며, 어쩔 수 없는 외과의사의 이 숙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때론 갓 태어난, 1000g도 되지 않는 몸무게의 미숙아들을 수술하기도 하는 소아외과 의사로서의 숙명은 더욱 가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어린아이들은 앞으로 살아갈 날이 너무 많기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최선을 다해서, 최소한의 장애만을, 또는 가능하다면 전혀 장애 없이 살아 갈 수 있도록 치료해줘야 하는 것이다.

수술이 아무리 잘 돼도 회복하는 과정에서도 별별 사건, 사고들이 항상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늘 촉을 곤두세우고 환자를 돌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나를 포함해서 내가 친하게 지내는 여의사들은 대부분 '촉'이란 것이 굉장히 발달해있고 예민하다. 정말 피곤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나만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 그나마 위로를 받는다.
 

한번은 새벽에 응급실에서 8살 남자아이가 사타구니 탈장이 의심된다고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는데 벌써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뭔가 환자의 병력과 증상을 비춰, 진단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새벽 2~3시경이지만 병원으로 바로 출발했다. 소아외과의사가 아니면 진단하기 어려운 소아들의 질환이 많아, 다른 의사들에게 환자를 맡길 수 없기 때문에 소아외과 의사들은 항상 불안하다.
 

새벽에 도착한 응급실에서 보니 역시 아이는 전혀 다른 질환이었다. 원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사타구니의 근육아래에 큰 고름집이 있었다. 아이를 입원시키고, 정규시간에 초음파 검사를 해서 바늘로 고름을 뽑아보기로 했다.  

그날 저녁에 회의가 있어서 좀 서둘러서 병원에서 나가봐야 했는데, 초음파실로 내려간 아이의 검사진행이 내 예상보다 오래 걸리고 있었다. 내 촉이 발동했다. 그리고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다.
 

불안증을 참지 못하고 검사실을 방문했다. 아이가 어리다보니 협조가 잘 되지 않아 아이에게 진정제를 투약하는 중이었다.

나는 검사를 진행하는 의사에게 내가 고름을 뽑을 테니 초음파를 잘 대어달라고 말하고 시술을 위한 장갑을 꼈다. 그 순간 호흡 모니터링에서 소리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아이 얼굴을 본 순간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 것을 알았다. 나는 즉각 '앰부 마스크'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거의 자동적으로 마우스 투 마우스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나의 간절한 숨이 3~4번 불어넣어진 후 아이는 호흡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의료진들이 장비들을 가지고 몰려왔다. 다행히 아이는 호흡이 금방 돌아왔고, 이후 후유증 없이 잘 치료 받고 퇴원했다.

그러나 나는 그날 있었던 회의도 까맣게 잊고, 중환자실에서 아이가 깨어날 때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이면서 지켜봤는지 모른다. 내가 검사실에 들러보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가 어떻게 됐을까? 정말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이 세상이 그렇기는 하지만 병원이라는 곳은 언제 어디서나, 생각지도 못한 예상키도 어려운 불행이 늘 도사리는 곳이다. 애초 병을 얻은 사람들이 그런 것이다. 의사는 이런 불행을 같이 이겨내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돈으로 재단되는 사회 안타깝고 상대적 박탈감 커지는 외과의사들"

특히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어깨가 너무 무겁고, 예상치 못한 불행을 정말 차단하고 싶고, 더 간절히 극복하길 바라는 의료진 중의 의료진은 바로 외과 의사다.

왜냐하면 약으로만 치료하는 것이 아닌 수술이라는 원죄를 짓게 되면서 환자와 함께 묶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돈의 가치가 정말 크다. 하지만 외과의사들은 '돈'의 가치를 넘어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돈'으로만 평가하는 우리 사회시스템이 너무 서운하고, 박탈감이 들 때가 많다.

팔자려니 하고 지내긴 하지만 반드시 변화가 있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박탈감이 심해질수록 외과의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어느 누가 책임만 무거운 채로 살아가고 싶겠는가. 신이 아닌 이상 한계가 있다.
 

어쨌거나 나의 '촉'이 내 불안증의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나의 이 불안증은 환자의 성공적인 회복과 맞바꾸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어쩌면 소아외과 의사로서 큰 축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내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나를 스스로 격려한다. 

데일리메디 dailymedi@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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