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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패러다임과 병원들 아픈 현실
한해진기자
[ 2017년 12월 14일 11시 19분 ]
[수첩]
요즘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메르스를 겪고 나서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라는 말을 덧붙이는 경우를 종종 본다.
 
씁쓸한 일이지만 이 말은 감염 관련 이슈에 더욱 잘 활용될 수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 B이비인후과에서 근육주사 처치를 받은 환자들이 비결핵항산균에 대량으로 감염된 문제를 비롯해 노량진에서는 수험생 한 명이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아 때 아닌 결핵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주사감염 문제는 금년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수차례 지적을 받은 바 있어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감염 관리에 생사가 오가는 중환자실은 더 큰 문제다. 다양한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다제내성균(슈퍼박테리아) 문제의 심각성이 전 세계적으로 증대하고 있다. 영국 항생제내성검토위원회(RAR)에 따르면 2050년까지 매년 1000만명 이상이 항생제 내성으로 사망해 암환자의 사망 수를 추월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국내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 국감에서는 반코마이신 내성 장내구균(VRE)과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MRSA) 등 항생제 내성균 확산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 균은 감염병으로 지정되지 않았는데 지난해 신고건수가 각각 1만2577건과 4만1330건으로 2011년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도 항상제 예방주간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항생제 내성관리대책 홍보에 나서는 등 열심이다. 과잉 항생제 처방 건수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슈퍼박테리아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슈퍼박테리아 치료제가 사실상 전무한 것은 해외도 마찬가지지만 국내에서는 개발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의료보험 구조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약가가 낮게 책정되고 있는 신약 항생제를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할 제약사가 있을까.
 
한편으로 이는 슈퍼박테리아의 위험성을 높인다. 항생제 신약이 없으니 국내 의료기관에서는 도입 30년이 지난 카바페넴 항생제가 계속 사용되고 있는데 이러다 보면 카바페넴내성균의 위협이 커지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분당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조영재 교수는 "항암제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항생제가 많은데 중환자 감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아직까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항생제 뿐만이 아니다. 최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중환자실 감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카테터 관련 혈류감염을 막기 위해서 가이드라인에 '클로르헥시딘(Chlorhexidine)'을 함유한 드레싱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는 조건을 확대했다. 물론 이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감염 예방을 소홀히 한다고 지적하긴 어렵다. 중환자실 감염 예방을 위한 모든 사항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늘 부족한 인력 문제야 말할 것도 없고, 가이드라인을 완벽히 준수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하다못해 카테터 하나를 교체하는 데 있어서도, 가이드라인은 감염을 막기 위해 수술에 사용되는 멸균포를 사용하라고 권장한다. 인체 내부에 직접 들어가는 기구이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 번에 3만5000원짜리 멸균포를 써가며 카테터를 교체하면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없다. 병원이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감염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철저한 예방이 최선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의료기관이 숫자 앞에서 ‘현실적으로’ 대응하고 있을 때, 질병의 위협은 한 발씩 더 가까워진다. 아무리 예측해도 발생을 막을 수 없다면, 그 비중이라도 줄여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한해진기자 hjhan@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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