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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병원 도입 '닥터 왓슨'과 서울行 암환자
김성미 기자
[ 2017년 03월 28일 06시 05분 ]

[수첩] '알파고 쇼크' 1년 이후 '인공지능(AI)'은 국내 의료계의 핵심 키워드가 됐다. 병원 현장에서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에서도 알파고 개발사인 구글이 아닌 경쟁사인 IBM이 최대 수혜자가 된 모양새다. 국내 지방대학병원들이 앞다퉈 '닥터 왓슨'을 도입하기 때문이다.

지난 해 12월 가천대 길병원이 첫 스타트를 끊은 후 금년 1월 부산대학교병원, 3월 건양대학교병원과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이 차례로 IBM '왓슨 포 온콜로지'를 도입했다. 국내 의료현장 도입 3개월 만에 왓슨은 경남·부산, 인천·경기, 대전·충청권, 경북권 등 네개 권역에 상륙했다.

IBM 측이 주요 '3차 병원'들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언제 또 왓슨 도입 소식이 들려올 지 알 수 없다. 병원계에서는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쳐 시대 흐름에 뒤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초조함과 '과열 경쟁 양상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공존한다.


지방병원들의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배경에는 서울 대형병원으로 향하는 지역 암환자들의 발길을 붙잡겠다는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왓슨은 300개 이상의 의학학술지, 200개 의학교과서, 미국종합압네트워크(NCCN) 가이드라인, 뉴욕 메모리얼슬론케터링암센터(MSKCC) 진료 기록을 학습했다. 이를 토대로 환자 정보에 따라 다른 치료법을 우선 순위 매겨 제안한다.


근거 기반의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의료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IBM과 왓슨을 활용하는 병원들의 설명이다.

건양대병원 최원준 병원장은 왓슨을 도입하며 "지역 환자들이 다른 진단을 받아보기 위해 일부 수도권 병원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송광순 계명대 동산병원장도 "지역 의료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왓슨을 활용해 세운 치료 계획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다. 아직까지 전 세계적으로 왓슨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한 연구 결과는 없다.

왓슨 관련 임상 연구로는 인도 마니팔병원이 지난해 12월 '유럽종양학회 아시아총회'에서 발표한 게 유일한데, 의료진 판단과 왓슨이 제안한 치료법의 일치도를 평가한 정도다.


이 병원은 대장암, 유방암, 직장암, 폐암 등 4종 암환자 1000명의 치료법을 대상으로 비교했다. 전체적으로 의료진 판단과 왓슨의 제안은 78% 가량 일치했지만, 암 종별로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직장암은 85%로 높은 반면 폐암은 일치도가 17.8%로 낮았다. 유방암의 경우 삼중음성은 67.9%, HER2 음성은 35%로 차이가 났다.

환자 생존율과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에서는 벌써 200명 이상의 환자가 왓슨 기반 암 치료를 받고 있고, 앞으로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왓슨이 커버할 수 있는 암종은 85%까지 확대된다. 현재 대장암·유방암·위암·자궁암·폐암환자 진료에만 적용되고 있는데, 올해 안으로 간담췌암·비뇨기암·혈액암 등이 추가될 예정이다. 

왓슨을 검증할 의무는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왓슨을 문헌 검색용 소프트웨어로 바라봐 비(非) 의료기기로 구분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도 발전된 의학교과서 개념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인식대로라면 왓슨을 도입한 병원들은 치료계획을 세울 때 참고하는 레퍼런스 중 하나에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일부 전문가들이 "잘 포장된 마케팅 도구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학병원 교수는 "치열한 생존 경쟁에 내몰린 국내 병원들의 불안감을 공략한 IBM의 마케팅 전략이 통한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첨단 장비를 가장 먼저 도입하는 '빅5'가 정작 왓슨에 관심을 보이지 없는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왓슨은 지방병원들에게는 '마지막 돌파구'다. 한 왓슨 도입 병원 고위 관계자는 "왓슨은 '빅4'에 비해 낮은 브랜드 인지도를 극복하기 위해 해당 병원 출신 '명의'들을 데려와 홍보했지만 환자들은 의사를 따라다니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혁신적인 첨단 기술로 병원 전체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왓슨을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해 9월 만난 왓슨을 가르친 MSKCC의 크리스 박사는 "근거 기반의 왓슨으로 전국 어느 병원을 방문하든 양질의 의료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왓슨이 의료전달체계 개선의 꼬인 매듭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왓슨이 단순한 마케팅 도구에 불과하다면 지역 환자들을 책임 진료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병원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전 세계적인 AI 열풍에 힘 입은 '반짝' 주목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생존율과 삶의 질 향상 등 왓슨의 유용성을 증명하는 게 우선이다.

김성미기자 ksm6740@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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