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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여의사들, 목표 정했다면 도전해서 얻기를"
김봉옥 한국여자의사회장
[ 2017년 03월 13일 05시 43분 ]


 “많아진 여의사 수에 비해 목소리 낼 기회 적어”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섬유노동자 1만5000여명은 여성의 참정권과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후 ‘빵(생존권)과 장미(참정권)을 원한다’는 여성의 목소리는 커져갔고 UN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제정했다. 하지만 109년이 지난 2017년에도 여성들은 여전히 ‘동등한 기회 보장’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의료계는 어떨까. 한국여자의사회는 여자 의사들의 권익 보호와 확대를 위해 꾸준한 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 내 여성 대의원 수 등 여전히 그 규모에 걸맞는 대표성을 보여주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해 여자의사회장에 취임한 김봉옥 회장은 여자의사들에게도 남자의사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 한국여자의사회장 취임 1년 됐다. 지난 1년 소회와 평가는
 

지난해 60차 정기총회에서 28대 여자의사회장으로 취임하고 5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10월 말까지 충남대병원장을 지내서 여의사회 회무에 정성을 기울이지 못한 측면이 있다. 지금은 회무와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충남대병원장을 맡아 최초의 여성 국립대병원장도 지냈다. 병원장 역임에 대해 한 마디 한다면
 

국내 국립대병원 최초로 여성이 원장이 돼 유리천장을 깼다는 평가를 받으며 임기를 시작했는데 벌써 마친 지 4개월이 지났다. 임기 초반에는 여성 원장보다는 단지 ‘원장’으로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사람들은 여자가 원장을 하면 남자 원장이 하는 것 다 하고 무엇인가를 특별히 더 하길 바라는 것 같다. 그래서 ‘여자 원장이 아닌 원장으로 평가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임기 초 2주기 의료기관평가인증을 마쳤고, 메르스에도 대응해야 했다. 공공기관 방만경영 정상화라는 정부 시책에 노조와 갈등을 빚기도 했고, 최고의 의료를 제공하고 환자안전을 지켜내는 국립대병원 본연의 역할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정례적인 회의체 이외에도 원장실을 개방해 모든 직원과의 비밀 대화가 가능하도록 했고 무엇보다 오는 4월 세종충남대병원 기공식을 앞두고 있는 것도 업적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할 수 있던 일도 있었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해바라기센터, 고위험산모 신생아 통합치료센터, 소아암 환자를 위한 병원학교, 장애 어린이를 위한 낮병동, 24시간 운영되는 직장보육시설 ‘아이행복지기’는 보석 같은 결실이다. 특히 24시간 병원 어린이집은 병원의 미래 인력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젊은 여자의사들은 육아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조사를 해보니 24시간 어린이집이 있는 순서대로 병원이 좋아졌다. 충남대병원도 24시간 어린이집이 운영되면 육아로 인해 이직하는 인원은 줄어들 것이고, 오히려 육아를 위해 병원에 오는 가정도 생길 것이다. 병원과는 거리도 15미터 정도 두게 해 감염관리도 잘 될 것이며, 5월 1일부터는 운영할 예정이다.
 

☞ 지방에서 여자의사회장이 나온 것이 최초다. 그러고 보면 항상 ‘최초’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롤모델이 돼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는지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어릴 부터 그런 소리는 많이 들어왔다. 학교 때도 ‘우리가 잘못하면 앞으로 여자들을 뽑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 이 정도 나이가 되니 무엇이든 최초가 아닌 게 없더라. 이제는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여자든 남자든 책임을 다 하면 되는 것 같다. 오히려 내 뒷모습을 보고 따라오게 될 후배들이 부담되지 않을까.
 

일부 언론보도에서 최초의 여자 재활의학과 전문의라고 나간 적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다. 1회 재활의학과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것은 맞지만 그해 합격한 22명의 재활의학과 의사 중에 나는 막내다. 그런데 언론에는 재활의학과 전문의 1호로 나왔다.
 

☞ 반대로 아직까지 여자 국립대병원장이 한 명 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전히 대학이나 의사회에서는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어려운 것 같다

여의사 수가 많고 진료와 연구 및 봉사를 잘하지만 의사 결정 위치에 여의사를 임용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모습이다. 특별히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그동안 남자들이 원장을 하는 것에 익숙해진 면이 있는 것 같다. 국립대병원에서는 제가 최초의 원장이지만 국립의료원이나 사립대병원으로 확대하면 여성 원장이 이미 있었다. 국립대병원이 더욱 관료적이고 보수적인 면은 사실이다.
 

여의사가 병원이나 학회에서 하위 보직을 맡을 기회가 적고, 당연히 훈련된 인재들 중 고위 보직자를 찾으려면 남자 의사에게 더 기회가 많다. 여의사에게도 임신, 출산, 육아, 가사와 병원 및 학교 일이 더해지면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에 후배들에게도 작은 보직을 맡았을 때 그 일이 하고 싶었던 일인지 생각되면 열정을 쏟아 일하길 권한다.
 

☞ 여성 전공의 수는 남성 전공의와 비슷한데, 교수 비율은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적다. 행정직 역시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여성의 비율이 떨어진다. 이 역시 유리천장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어느 조직이나 그런 면이 있다. 아래쪽은 여자가 많지만 위쪽은 남자가 많다. 이를 가위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분명한 데이터가 아직은 없는 상황이다. 중간관리자도 마찬가지다. 원장 임기 때 공정한 평가를 통해 중간관리자를 뽑으려 했는데 여성이 많이 올라갔다. 그동안 역량이 떨어져도 남성이라는 이유로 올라갔던 사람들이 빠졌다. 역량이 아닌 다른 것으로 평가하면, 다들 줄서기에 바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시설과에서도 제일 높은 직급의 직원은 여성이었다.
 

의협에서 여성 대의원의 수가 너무 적은 것은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다. 의협 집행부와 대의원회를 정부와 국회에 많이 비교를 하는데, 적어도 비례 대의원에서는 여의사 회원 수에 비례해 대의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현재 24% 정도 되니 그 수준까지 늘려가는 것이 목표다.
 

☞ 과거에는 여성이라서 할 수 없는 전공과목들이 있었다. 지금도 그러한 차별이 있나

이제 “너는 여자라서 안 돼”라는 진료과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얘기하면 바로 제소에 들어간다. 정말 수평적인 경쟁을 해야 하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안 뽑는 곳은 없어야 한다. 실제로 올해 여자의사들이 안 들어간 진료과는 없다. 다만, 여자의사들이 있으면 의국 풍경이 바뀌기도 한다. 남자 당직실만 있다가 여자당직실도 만들어야 하며 수술실의 휴게실도 여성 휴게실이 생겨야 한다. 대한의사협회 및 대한전공의협의회와 함께 이점은 계속해서 병원들에 요청해나갈 계획이다.
 

☞ 일-가정 양립은 여자 의사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여의사들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 의사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가장 대표적으로 멘토링이 있다. 이전에는 결혼을 하고 육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들은 바도 없었다. 그래서 여의사회에서 멘토링을 하고 있다. 전국의 의대가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고, 작은 지회에서도 멘토와 멘티가 연결돼 있다. 여학생들과 결혼, 출산, 육아, 일-가정 양립에 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의견을 나눈다. 근무조건, 시간관리법, 스트레스 관리법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가사 도우미 선택이라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한다. 이를 통해 계획적이고 밸런스를 갖춘 삶을 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를 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쉽지 않는 점은 사실이다. 이제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펠로우까지 멘토링의 대상을 늘리고자 계획 중이다.
 

☞ 남자 교수의 여전공의에 대한 성추문이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이런 문제들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의료계가 성폭력이 유난히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상급자의 지위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과 진로에 대한 권한을 교수가 가진다는 점에서 여전공의가 약자가 된다. 이를 위해 병원장 시절에도 지도전문의 교육을 하면서 성폭력 예방 교육에 신경을 썼다. 전공의에게도 즉각적인 보고를 하라고 했고, 문제 발생시 병원에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했다. 결국 양쪽에 철저히 개입하는 수밖에 없다.
 

☞ 결국 여성 전공의들의 복지가 중요할 것 같다. 여자의사회장에 취임하면서 여전공의 복지실태 조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병원장 임기 마지막과 여의사회장 임기가 겹치다 보니 복지실태 조사를 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제는 여의사회에 집중할 수 있게 돼 임기 후반기에 열심히 할 예정이다. 당직실과 수술실 탈의실이 여전히 열악하다. 여전공의의 복지 실태가 이미 목소리를 높여 온 간호사보다 못할 때도 많다. 이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볼 계획이다. 병원장을 하면서 병원쪽도 좀 알게 돼서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올해 여자의사회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있다면
 

여성가족부 및 경찰청과 성폭력 방지 매뉴얼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 또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여성인재 아카데미를 진행하며, 전문직종을 위한 교재도 만들기로 했다. 그동안 여성 리더 중 여의사만을 위한 교재가 없었다. 여자변호사회는 있었는데 여의사회에서는 없었다. 이에 교재를 다변화해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곧 양성평등교육원과 MOU 체결을 할 예정이다.
 

지난해 60년을 맞이한 여자의사회는 이제 새로운 60년을 준비하는 입장이다. 이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면이 여성사 박물관이다. 국회에서 여성사 박물관 건립위원회가 있는데, 우리 여의사회가 그 중 여자의사들의 역사를 맡게 됐다. 6월에 국회에서 킥오프 미팅을 시작한다. 지난해 60주년 행사를 하면서 선배 여의사들의 소장품들을 타입캡슐에 넣어놨고, 멀티미디어 박물관을 지향하며 현직의 여의사 선배들의 육성녹음 작업도 하고 있다. 나중에 소장품과 함께 전시한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무국 정비도 중요한 과제다. 61년이 된 조직인데 상근 직원의 수가 적고 상근 의사가 한 명도 없다. 사무직원을 보강하고 시스템을 보강하지 않으면 회무가 효율적으로 굴러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회무를 효율화하는 것이 올해 중요한 목표다.
 

☞ 여의사회에서 발간하는 기관지인 여의회보가 300회를 맞이했다

기관지를 만들어오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신문을 통해 여의사회는 물론 다른 유관기관의 활동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여의사들과 여성 리더들 간 네트워킹에도 요긴하다. 모바일 및 애플리케이션도 잘 활용해나가면서, 퇴보 없이 앞으로 전진해나갈 계획이다.
 

☞ 후배 여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기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확실한 목표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목표를 정했다면 도전해서 얻어라. 작은 일을 통해 가능성이 보이면 지속적으로 자기 관리를 하고 계발하고 노력하라고 전하고 싶다.  

정승원기자 origin@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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