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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가 일반의로 사는 '서글픈 자화상'
"전문성 펼칠 수 없다면 포기하는 게 현명"…전문과목 미표시 의원 증가일로
[ 2014년 04월 10일 22시 15분 ]

의과대학 6년, 인턴 1년, 전공의 4년. 힘들고 고달팠던 시절을 보내고 어렵게 취득한 전문의 보드. 적게는 몇 년 많게는 20여 년 동안 전공과목을 당당히 내걸고 병원을 운영했다. 하지만 저수가와 팍팍해진 의료제도, 장기화된 경기불황 등으로 더 이상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사로 전공진료가 아닌 미용성형 등 생존형 진료가 늘어나고 있다. 전문과목 간판을 내리고 ○○의원으로 살아가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편집자]


흉부외과와 외과 등 일부 진료과 전문의들은 이미 십수년 전부터 개원과 동시에 전문의 보드를 내려놓는 것이 일반화 됐다. 세분화된 진료환경에서는 전문의로 대접받지만 1차 의료기관에서는 자신의 전문 진료영역을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흉부외과 전문의는 그야말로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1차 의료기관에서 전문과목을 내걸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산부인과와 비뇨기과다. 실제 10년 전부터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전문의들이 고생해서 딴 전문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고 일반의로 살아가는 사례는 증가일로다. 비단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렵게 딴 보드를 포기하고 미표시 전문과목 GP로 전환하는 의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 사회적인 관심과 대책이 절실하다.


실제 경기도 안양시 ○○○여성의원 A원장은 산부인과 전문의다. 하지만 산부인과 전문의를 포기하고 일반의로 진료한지 벌써 5년이나 됐다. 병원 경영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A원장은 10년 전 분만장을 폐쇄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저출산과 저수가 등으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분만장 폐쇄에 이어 진료과목도 변경해야 했다. 결국 A원장은 간판에서 ‘산부인과’ 네 글자를 떼기로 했다. 결심을 하기까지 힘든 시간이 흘렸지만 여성의학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는 “전문의를 포기하고 일반의를 택한 것은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시대적인 강요였다”고 호소했다. “그래도 나는 꽃을 피울 수 있었던 시절이 있어 좋았지만 지금 후배들은 척박한 땅에서 씨를 뿌릴 수도 없어 안타까운 마음 뿐”이라고 토로했다.

 

“산부인과 간판만 봐도 내 심장은 뭉클”


‘산부인과’ 단어만 보면 애증이 교차한다는 B원장은 10년을 넘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해 온 산부인과의원 간판을 내리는 날 남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B산부인과를 운영했던 원장은 3년 전 ○○의원으로 병원 간판을 고쳐 달고 진료과목에 성형외과와 피부과를 추가했다.


그는 “실수투성이었던 전공의 시절과 코피 쏟으며 힘들게 딴 전문의보드, 시도 때도 없이 당직을 설 때면 산부인과를 선택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의사라는 보람을 느끼게 해줬던 것도 산부인과”라고 회상했다. B원장은 “산부인과를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진료영역을 확대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고 덧붙였다.

 

“비뇨기과 전문의에서 탈모 전문의로 변신”


경기도 성남의 한 비뇨기과의원 역시 얼마 전 ○○○○의원으로 간판이 바뀌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소문난 비뇨기과의원으로 환자가 줄을 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환자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최근 몇 년 새 환자를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해졌다.


때마침 전문과목을 포기하는 의사들이 피부·성형으로 전환해 C원장도 덩달아 피부미용에 발을 들여놨다가 5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비뇨기과 실패에 이은 두 번째 실패다. 이후 고심을 거듭하다 탈모에 초점을 맞추고 탈모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전문의를 포기한 의사들이 주로 선택하는 진료영역이 성형외과와 피부과다. 내과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또는 일반의는 성형외과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고, 피부과영역은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전문의가 진료과목으로 택하는 사례가 많다.


왜 이들은 자신이 수년에 걸쳐 쌓아온 스펙을 버리고 비전문의로 살아가는 것일까. 이유는 단 한 가지, 저수가 때문이다. 질환 치료 목적의 진료는 대부분 급여 대상이기 때문에 비급여 진료로 전환해 보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2000년대 초반부터 미표시 전문의가 생겨나면서 2006년 3000여 곳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이후 2009년 4835명을 넘기면서 2010년에는 4954명, 2011년에는 5035명, 2012년 5139명, 2013년 5186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의사회 차원 산부인과·비뇨기과 문턱 낮추려 노력하지만…


위기의식을 느낀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대한비뇨기과의사회는 전문과목 명칭 변경은 물론, 환자 유치를 위해 ‘병원 문턱 낮추기’ 캠페인을 벌이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것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산부인과와 비뇨기과는 위기가 현실화되자 변화를 위한 활로 모색에 나섰다. 산부인과에 대한 미혼여성들의 심리적 문턱이 높다고 판단한 학회와 의사회는 지난 2011년부터 산부인과 진료과명을 ‘여성의학’으로 변경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산부인과의사회는 문턱 낮추기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진료과목 2개 쓰기 등 사회적인 의식을 전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산부인과의사회 박노준 회장은 “어려울 때 일수록 모든 산부인과 의사들이 뭉쳐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면서 “의료제도 개선과 더불어 대국민 인식전환 홍보를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지만 산부인과 전문의를 포기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비뇨기과 역시 사정은 같다. 대한비뇨기과의사회는 지난 2012년 “귀여운 아들의 포경수술,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정관수술, 내 자존심을 찾아줄 남성수술… 누구 손에 맡기시겠습니까?”란 문구로 대국민 홍보에 나섰다. 


비뇨기과의사회는 비뇨기과 전문 질환과 처방, 수술은 비뇨기과 전문의에게 받아야 한다는 의식 전환을 위해 라디오 홍보도 함께 진행했다.


대한비뇨기과학회도 지난해(2013년) 명칭 변경 및 대국민 홍보 강화를 위해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학회는 우선 비뇨기 질환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전립선 비대증과 과민성 방광, 남성 갱년기 질환, 요로감염이 비뇨기 질환이라는 대국민 홍보활동을 펼쳤다.


최근에는 비뇨기과가 수가 가산을 비롯한 정부 지원책을 촉구하는 국회 토론회도 개최했지만 수가 조정은 실패한 상태다. 

 

“전폭적인 정부 지원 없으면 미래도 없다”


산부인과의사회 이기철 보험부회장은 “산부인과 전문의는 분만할 수 없는 여건 때문에 분만장을 폐쇄하고 생계를 위한 진료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산부인과 전문의가 자괴감을 느끼지 않고 전문의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수가를 현실화하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노력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기철 보험부회장은 “의식주와 함께 의료는 국가 안전망이다. 응급의료비와 같은 지원이 없으면 분만 인프라는 물론 산부인과 의료체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장성을 확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면서 “식대지원과 같은 보장성은 누가 생각해도 잘못된 정책이지만 시행한 이상 거둬들일 수 없다. 국가가 보장성을 강화하고 확대하면 낮은 의료수가로 인해 결국 의료는 도태될 수밖에 없고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뇨기과 역시 수가 가산을 적극 요구하고 있다. 또 전문약물의 비뇨기과 전문의 처방 우선권과 요류역학검사 판독료 신설 등을 제안했다.


비뇨기과학회 이영구 보험이사는 “과별 형평성 있는 발전 및 유지를 위해 상대가치 점수체계에서도 과별 행위의 빈도를 고려하고, 공평하게 수가를 조정하는 정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영구 보험이사는 “가장 효과적이고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외과처럼 비뇨기과 수술을 전문의의 경우 30% 수가 가산하고 비뇨기과 전문 영역인 경요도 내시경 수술은 흉부외과와 같은 수준인 100% 수가 가산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학회 한상원 회장은 “전문진료영역 붕괴가 시작된 지 오래인 지금 제대로 된 전문의 제도 유지를 위한 해법 찾기에 신중해야 한다”면서 “ 전문의 행위수가를 일정 부분 차등을 두지 않는다면 그나마 전문의 제도가 잘 정착된 우리나라에서 이것마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회장은 “영상의학과, 정신과 정도를 제외하고 많은 과의 진료영역이 다 흐트러지고 있다. 현재 잘나가는 정형외과와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같은 진료과를 보면 해답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김도경 기자 kimdo@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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