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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책임-형사책임 구분법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세승)
[ 2013년 09월 29일 20시 00분 ]

민법이 개인 간의 행위, 재산권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법체계라면 형법은 형벌이라는 국가의 공권력이 작용, 다른 제재수단이 없을 때 최후적으로 투입되는 수단이다.

 

의료의 영역에서 민사와 형사가 가장 자주 만나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의료와 관련해 환자가 다치거나 사망했을 때인데, 민사상으로는 과실로 인한 금전적 손해배상이, 형사상으로는 업무상과실치사상의 죄로 형벌을 받을 것인지가 문제된다.

 

그렇다면 민사상 과실이 인정되는 경우 반드시 형사상으로도 과실이 인정돼야 하는 것일까? 한 대학병원에서 판막치환수술을 받은 환자가 수술 후 기관삽관이 탈관, 사망하게 됐고, 유족은 대학병원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리하여 당시 수련의 및 간호사가 자리를 비우는 등 환자를 소홀히 관리해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등의 이유로 대학병원의 과실을 인정하는 판결이 선고됐다.

 

반면, 같은 사안에 대해 유족이 수련의 및 간호사를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고소한 형사사건에서 검찰은 혐의없음의 불기소처분을 했다.

 

민사와 형사의 결론이 달라지자 유족은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자의적인 처분이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민사사건과 형사사건에 있어서 과실인정의 기준이 반드시 동일해야할 이유는 없으므로 그 점만으로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자의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검찰이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수사를 했거나 헌법의 해석, 법률의 적용 또는 증거판단에 있어 중대한 잘못이 있다고 보이지 아니하므로 유족의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위 사건 뿐만 아니라 경찰관이 총기를 사용하여 범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서 경찰관의 총기 사용이 경찰관직무집행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더라도 민사상으로는 불법행위책임을 질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 등 민사상으로는 불법행위의 책임을 지더라도 곧바로 형사상 불법책임으로 연결되지 않는 사례들이 다수 있다. 그리고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구분된다는 것이 분명한 원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상과실치사상과 관련한 형사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관련 민사사건의 결론이 형사사건의 결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의료의 영역이 워낙 전문적이고 법관들도 과실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보통이므로 민사의 영역에서 이미 과실이 있다는 결론이 내려진 동일한 사안에서 형사상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이 부담이 될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불행한 사고가 민사상, 형사상으로 동시에 문제되는 경우, 한 쪽의 판단이 다른 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전제로 신중한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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