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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血) 사랑 외길 40년…"아직도 뜨겁다"
[ 2012년 02월 10일 03시 00분 ]
‘완치’가 없기에 ‘보람’도 없다. “고맙다”는 말을 전해 듣기는 더더욱 어렵다. 유전질환인 탓에 학술적 연구가치 또한 높지 않은 질병. 하지만 적어도 그에겐 평생을 함께 한 그리고 남은 여생을 함께 할 동반자 같은 질환 ‘혈우병’. 한국혈우재단 최용묵 이사장은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피(血) 권위자다. 그 중에서도 혈우병 통(通)이다. 정년퇴임 후에도 혈우병 환자와 부대끼며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은 어쩌면 이미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혈관이 오그라들 정도의 추위를 뚫고 찾아간 한국혈우재단. 역시나 그는 혈우병 환자 진료중이었다.

혈액과 사랑에 빠지다

쉽게 피가 나고, 잘 굳어지지 않아 피가 멎지 않는 혈우병(血友病). 이 질환의 어원을 살피면 최용묵 이사장의 필연이 어렵지 않게 유추된다.

혈우병의 영문표기는 ‘Hemophilia’. 이 단어는 ‘hemo=blood’, ‘phil=love’의 조합으로, 혈액을 좋아한다(love of blood)는 뜻을 갖고 있다. 때문에 한자도 ‘血友’를 사용한다.

최용묵 이사장은 소아과 전문의임에도 유독 ‘혈액’에 집착했다. 계기는 서울대병원 수련시절 혈우병 환자와의 첫 만남에서 시작됐다.

‘혈우병’으로 진단이 내려졌지만 아무것도 해줄게 없었다. 당시에는 혈우병 치료제가 전무했기 때문에 소량의 혈장을 투여해 주는게 의사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1969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뉴저지 대학병원에서 소아혈액종양을 전공, 1982년까지 조교수로 일했다. 이 기간 동안 혈우병에 매달렸고, 지금의 뉴저지 혈우센터의 기반을 닦았다.

10여 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여전히 혈우병 불모지였다. 경희의료원 소아과에서 근무를 시작하며 아름아름 혈우병 환자를 진료했다.

당시 혈우병을 다루는 의사가 전무했던 탓에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갑작스런 관절 출혈로 병원을 찾는 응급환자들이 문제였다.

소아과 전공인 그가 수술을 집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때 그의 고민을 덜어준 이가 바로 국내 관절수술의 대가인 유명철 교수다.

서울의대 동기동창인 유명철 교수가 응급 혈우환자 수술을 담당하며 경희의료원은 두 교수의 환상적인 호흡으로 국내 혈우병 치료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했다.

실제 2012년 현재 전국 혈우병 환자의 수술 90% 이상이 경희의료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물론 ‘환상의 콤비’가 현역에서 물러난 만큼 그 후학들이 담당하고 있다.

혈우재단과의 인연

국내 혈우병의 역사는 1991년 한국혈우재단 설립을 계기로 큰 전환점을 맞았다. 이 때까지만 해도 국내 혈우병 환자 수조차 파악되지 않았을 정도로 열악했다.

혈우재단 설립은 녹십자 故 허영섭 회장의 의지였다. 허 회장의 혈우재단 설립은 독일 유학시절 알게 된 지인의 권유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최용묵 이사장 역시 혈우재단 설립에 한 몫했다. 故 허영섭 회장과 중학교 선후배 사이인 최 이사장은 자문을 구하는 허 회장에게 혈우재단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업의 사회공헌’과 함께 환자들에게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치료와 재활을 제공할 수 있다는 부연을 늘어 놓으며 재단 설립에 적극 동조했다.

그렇게 한국혈우재단이 설립됐고, 이후 국내 혈우병 환자들은 전에 누리지 못했던 치료혜택을 받으며 삶의 질을 높여나갈 수 있었다.

실제 재단이 설립되기 전 혈우병 환자의 평균 수명은 20.3세였으나 20년이 지난 지금 2.5배 늘어난 52.1세다. 재활을 통해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환자도 부지기수다.

혈우재단은 진료비 지원, 환자조사 및 등록, 재활, 재단부설 병원운영 등 구체적이고 다양한 지원사업을 통해 혈우병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물론 지나온 세월 속에 환자단체인 코헴회와의 관계가 불편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최 이사장은 이 역시도 국내 혈우병 역사의 진일보를 위한 성장통으로 받아들였다.

최용묵 이사장은 “환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지향하는 것은 당연하고 적극 권장해야 한다”면서도 “혈우재단의 역할과 존재가치를 부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아쉬움을 토했다.

삭감 알러지의 비애

지난 2004년 경희의료원에게 2억원이 넘는 진료비 삭감 통보가 내려졌다. 혈우병 환자에게 과도한 치료를 했다는게 이유였다.

당시 환자의 진료비는 10억원. 이 중 1/4을 삭감 당하면서 일선 병원에서는 자연스레 혈우병 환자 기피현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혈우병 치료제에 보험금을 과도하게 삭감, 병원들이 치료를 기피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혈우병 환자에 대한 포괄적인 관리는 차치하고 대부분의 병원이 진료 자체를 축소하거나 심지어 중단하고 있다.

실제 전국에 10여개 혈우병 지정병원이 있지만 이 중 실제 혈우병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은 극히 일부다. 지정병원제가 유명무실해진지 오래라는 얘기다.

최근 한 혈우병 환자가 뇌출혈로 사망했다는 소식은 이러한 상황을 잘 대변한다. 뇌출혈 증상을 느껴 가까운 병원을 찾았으나 진료를 거부당해 병원 두 곳을 전전하다 사망한 사건이었다.

최용묵 이사장은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삭감 알러지의 비애’라고 정의했다. 일선 병원들이 삭감이 두려워 혈우병 환자를 기피하고 있는 상황을 빗대는 안타까움의 표현이었다.

물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측에서도 경희의료원 사건 이후 현실적인 개선책을 마련, 현재 삭감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병원들의 맘을 돌리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최 이사장은 “현재 대부분의 혈우병 환자 수술을 담당하고 있는 경희의료원의 경우 삭감 당하는 일이 극히 드물지만 이를 수긍하는 병원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혈우병에 대한 의료진 역량 강화도 넘어야 할 과제다. 병원 자체적으로 혈우병을 기피하고 있는 탓에 일선 의료진은 환자를 맞이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

그렇다고 한 숨만 내쉬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최용묵 이사장은 몇 안되는 국내 혈우병 전문가들과 의기투합, 혈우병연구회를 발족하고 진료가이드라인도 만들었다.

최용묵 이사장은 “완치가 없는 질환이라고는 하지만 의사의 진료까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보다 많은 의사들이 관심을 갖고 진료에 나서주길 매일 기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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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진기자 djpark@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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